존레논 이매진 탄생 배경과 의미 정리, 오노 요코가 공동작곡가가 된 이유

솔로 시절 가장 사랑받은 앨범의 타이틀곡

존 레논의 ‘이매진’이 어디에서 출발해 어떻게 녹음되었는지, 2017년에 오노 요코가 공동작곡가로 이름을 올린 까닭과 레논의 삶과 업적을 연표와 현장 사진으로 정리했습니다.

센트럴 파크 스트로베리 필즈 바닥에 놓인 흑백 원형 모자이크, 가운데에 IMAGINE 글자. 그 위에 ‘존 레논 이매진’ 배지와 ‘솔로 활동 최고의 성공작, 오노 요코와 함께 만든 평화의 노래 이매진’ 제목, 1971 앨범·싱글 발표, 1985 스트로베리 필즈 개장, 2017 공동작곡 오노 요코, 2021 발표 50주년 연표, ‘티튼허스트 파크 녹음 · 오노 요코의 그레이프프루트’ 문구

‘이매진’은 1971년 발표된 존 레논의 싱글이자 같은 이름의 앨범 타이틀곡으로, 20세기에 가장 큰 영향을 준 노래 가운데 하나입니다. 곡과 앨범 모두 상업적으로도 비평적으로도 레논의 솔로 작품 중 가장 큰 성공을 거뒀어요.


탄생 배경 — 비틀스 해체 1년여 뒤 티튼허스트 파크에서 녹음한 앨범

비틀스가 해체된 지 1년이 조금 지난 1971년, 레논의 삶은 아직 안정되지 않았습니다. 변호사들이 밴드의 남은 문제를 정리하는 동안 레논은 오노 요코와 함께 일본에 있는 오노의 가족을 만나러 갔고, 오노가 전남편 토니 콕스와 낳은 딸 교코의 양육권을 얻으려고 미국을 찾았죠.

1970년 말 나온 첫 솔로 앨범 「John Lennon/Plastic Ono Band」는 비평가들의 찬사를 받았지만 시장의 반응은 미지근했습니다. 레논은 예술가이면서 대중을 즐겁게 하는 엔터테이너였기에, 다음 앨범의 과제는 듣는 사람이 사랑하고 마음에 품을 음악에 자신의 생각을 담는 것이었어요. 그 결과물이 최대한 많은 사람과 소통하려 한 앨범 「이매진」입니다.

앨범 「이매진」의 녹음과 발표 일정을 정리한 표입니다. 녹음은 영국 Ascot Sound Studios에서 1971년 6월 21일부터 7월 2일까지, 녹음과 믹스는 뉴욕 Record Plant East에서 1971년 7월 4일부터 5일까지 진행됐습니다. 앨범은 미국에서 1971년 9월 9일, 영국에서 1971년 10월 8일에 발표됐고, 싱글 ‘이매진’은 미국에서 1971년 10월 11일에 발표됐습니다.
앨범 「이매진」 녹음·발표 일정

레논은 런던 외곽 애스콧의 자택 티튼허스트 파크에 스튜디오를 지어, 늘 녹음하던 애비 로드에 가지 않고도 기본 트랙을 녹음했습니다. 프로듀서 필 스펙터가 다시 합류해 레논과 함께 조지 해리슨, 클라우스 부어만, 드러머 앨런 화이트 등 가까운 연주자들을 이끌었고, 곡 ‘이매진’은 이곳에서 한 번의 세션으로 녹음됐어요. 테이프는 뉴욕 레코드 플랜트 이스트로 옮겨져 킹 커티스의 색소폰 등 마지막 오버더빙을 거쳤습니다.


노랫말과 의미 — 오노 요코의 시집 「그레이프프루트」에서 나온 상상

‘이매진’은 오노 요코의 작업에서 출발했습니다. 오노는 1964년 펴낸 시집 「그레이프프루트」의 작품마다 ‘상상해 보라(imagine)’는 말로 시작했고, 1963년 작품 「Cloud Piece」의 한 구절은 앨범 커버에도 인용됐어요. 영적인 일이든 현실의 일이든, 목표를 이루려면 먼저 그것을 마음속에 그려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레논은 비틀스 멤버였던 시절에 ‘이매진’의 작업을 시작했고, 곡은 앨범보다 2년 앞선 1969년에 만들어졌습니다. 레논은 훗날 노랫말과 콘셉트가 「그레이프프루트」에서 그대로 나왔다고 말했고, 1980년 BBC 인터뷰에서는 오노의 이름이 작곡가란에 올라야 한다고 말했죠. 오노를 작곡가로 올리지 않은 데에는 성차별주의적인 시각도 반영됐다는 것이 레논 자신의 설명입니다.

나는 이기적이었고 마초적이었으며 아내의 공을 빠뜨리곤 했다

존 레논, 2017년 NMPA 시상식에서 상영된 인터뷰 영상

곡은 종교와 국경, 사유재산이 없는 유토피아를 그립니다. 같은 시기의 ‘Give Peace a Chance’, ‘Power to the People’, ‘Happy Xmas (War is Over)’와 달리 드러난 정치적 메시지를 담지 않았고, 찬송가처럼 단순한 편곡에는 사람들이 함께 품는 상상력이 세상을 더 낫게 만든다는 레논의 믿음이 담겨 있어요. 같은 앨범의 ‘Gimme Some Truth’는 우리가 사는 혼란한 현실을 똑바로 바라보며 지금 당장 답을 요구하는 곡으로, ‘이매진’과 미학적·이념적 균형을 이룹니다.


공동작곡가 — 2017년 NMPA 연례행사에서 작곡가로 추가된 오노 요코

2017년 6월 14일 뉴욕에서 개최된 미국음악출판협회(NMPA) 설립 100주년 연례행사에서, ‘이매진’은 협회 설립 이후 나온 노래 중 최고의 노래로 선정돼 ‘Centennial Song’ 상을 받았습니다. 같은 행사에서 NMPA 대표 데이비드 이스라엘라이트는 오노 요코를 ‘이매진’의 작곡가로 추가한다고 발표했어요.

NMPA는 레논 스스로 오노와 함께 만든 곡이라고 말했던 과거 발언을 근거로 들었습니다. 상을 받은 오노에게 그날은 “내 인생 최고의 순간”이었죠. 지금 앨범 「이매진」의 크레디트에서도 ‘이매진’과 ‘Oh My Love’ 두 곡은 존 레논과 오노 요코의 곡으로 기록돼 있습니다. 공동작곡 크레디트에 이르기까지의 흐름은 다음과 같습니다.

‘이매진’에 오노 요코의 이름이 공동작곡가로 오르기까지를 정리한 세로 연표입니다. 1964년 오노 요코가 시집 「그레이프프루트」를 펴냈고, 1969년 곡 ‘이매진’이 만들어졌으며, 1971년 앨범과 싱글로 발표됐습니다. 1980년 레논은 BBC 인터뷰에서 오노가 작곡가란에 이름을 올려야 한다고 말했고, 2017년 6월 14일 미국음악출판협회(NMPA) 100주년 연례행사에서 ‘이매진’이 ‘Centennial Song’ 상을 받으며 오노 요코를 작곡가로 추가한다는 발표가 나왔습니다.
‘이매진’ 공동작곡 크레디트까지의 연표

오노는 레논의 부인으로만 알기 쉽지만, 설치미술가이자 행위예술가이며 뮤지션으로도 활동하는 전방위 예술가입니다. 앨범 「이매진」의 커버도 오노가 찍은 사진이고, 구름 속에 머리를 둔 레논을 꿈꾸는 사람으로 그려 냈어요.


센트럴 파크 스트로베리 필즈와 ‘이매진’이 울린 무대

레논의 기념 공간은 그가 세상을 떠난 직후부터 계획됐습니다. 뉴욕시는 레논과 오노가 살던 다코타 빌딩 맞은편, 레논이 즐겨 걷던 센트럴 파크 구역에 ‘스트로베리 필즈’라는 이름을 붙였어요. 이름은 레논이 비틀스와 함께 만들고 부른 1967년 곡 ‘Strawberry Fields Forever’에서 왔습니다.

오노는 세계 여러 나라에 식물과 돌을 보내 달라고 청해 국제 평화의 정원을 만들었고, 스트로베리 필즈는 레논의 45번째 생일인 1985년 10월 9일 정식으로 헌정됐습니다. 웨스트 72번가 입구 근처 5에이커 넓이의 정원 바닥에는 이탈리아 나폴리시가 기증한 모자이크가 있고, 그 가운데에는 ‘Imagine’ 한 단어만 새겨져 있죠.

센트럴 파크 스트로베리 필즈 바닥의 흑백 원형 모자이크를 가까이에서 찍은 사진입니다. 방사형 무늬 가운데 IMAGINE 글자 둘레에 추모객이 놓아 둔 붉은 장미와 흰 꽃, 판다 인형, 과일이 흩어져 있고, 모자이크 위쪽 가장자리 너머로 서 있는 방문객들의 다리가 보입니다. 아래쪽에 'Imagine 모자이크'와 '뉴욕 센트럴 파크 스트로베리 필즈'가 표시되어 있습니다.
추모객이 꽃을 놓아 둔 스트로베리 필즈의 Imagine 모자이크

1980년 레논이 세상을 떠난 뒤 ‘이매진’은 이상과 투쟁을 함께 떠올리게 하는 곡이 됐어요. ‘이매진’이 울려 퍼진 주요 무대는 다음과 같습니다.

‘이매진’이 울려 퍼진 무대와 장소를 네 칸 카드로 정리한 이미지입니다. 뉴욕 타임스스퀘어에서는 2006년부터 새해맞이 볼 드롭 직전에 연주되고, 2012 런던 올림픽 폐막식과 2018 평창 올림픽 개막식에서도 울렸습니다. 리버풀 존 레논 국제공항은 노랫말 “Above us, only sky”를 모토로 사용합니다.
‘이매진’이 울린 무대와 장소

베드 인 평화 시위부터 1980년까지, 존 레논의 삶과 업적

레논의 삶에서 변하지 않은 것은 거의 없었어요. 부모는 예고 없이 그의 삶에 들어왔다 떠나기를 되풀이했고, 열일곱 살에는 어머니를 교통사고로 잃었습니다. 그 뒤로 레논은 사람을 쉽게 믿지 못했고, 오노 요코와의 결혼 생활이 온전히 안정되고 나서야 누군가를 사랑하는 일을 두려워하지 않게 됐습니다.

레논은 1966년 전위예술가 오노 요코를 만났고, 두 사람은 음악 활동 외에도 자신들의 영향력을 활용해 ‘BED-IN’ 퍼포먼스와 ‘WAR IS OVER(전쟁은 끝났다)’ 캠페인 등 평화운동에 앞장섰습니다. 베트남 전쟁이 한창이던 1969년 3월에는 신혼여행 중 암스테르담 힐튼 호텔 침대 위에서 베드 인을 벌였고, 같은 해 5월 캐나다 몬트리올 퀸 엘리자베스 호텔에서 두 번째 베드 인을 이어 갔죠.

흑백 사진입니다. 가운데 가르마의 어깨까지 오는 긴 머리에 둥근 금속테 안경을 끼고 수염을 기른 존 레논이 깃에 짙은 테두리가 있는 밝은 잠옷 차림으로 창가 앞에서 정면을 보고 있습니다. 아래쪽에 '베드 인'과 '1969년 3월 25일 · 암스테르담 힐튼 호텔'이 표시되어 있습니다.
1969년 3월 암스테르담 힐튼 호텔 베드 인 중의 존 레논

1980년 이전 5년 동안 레논은 대중 앞에서 거의 모습을 감추고 아들 션을 키우는 일과 오노와의 삶에 전념했습니다. 1980년 가족과 가정의 행복을 담은 앨범 「Double Fantasy」로 다시 나섰지만, 그해 12월 뉴욕 맨해튼에서 극성팬의 총에 맞아 마흔의 나이로 숨졌어요. ‘이매진’은 발표 때부터 큰 인기를 끌었지만 레논이 숨진 뒤 더욱 유명해졌고, 밥 딜런의 ‘블로잉 인 더 윈드’와 함께 대표적인 반전가로 꼽힙니다.

비틀스에서 레논은 폴 매카트니와 함께 음악사에 남을 곡들을 만들었고, 솔로 시절에는 실험적인 음악과 정치 활동, 반문화 운동에 뛰어들며 ‘Working Class Hero’, ‘Instant Karma!’, ‘#9 Dream’ 같은 곡을 남겼습니다. 비틀스의 창립자이자 리더로, 또 솔로 아티스트로 레논이 받은 상과 기록은 다음과 같습니다.

존 레논이 비틀스의 창립자이자 리더로, 또 솔로 아티스트로 받은 상과 기록을 정리한 카드입니다. 그래미 어워드 8회(평생공로상 2회 포함), 브릿 어워드 5회(음악 공로 특별상 2회 포함), NME 어워드 21회, 아이버 노벨로 15회, 아카데미상 1회를 받았습니다. 로큰롤 명예의 전당과 송라이터 명예의 전당에 헌액됐고, 할리우드 명예의 거리에 별이 있으며, 2008년 롤링스톤 ‘역대 가장 위대한 가수 100’에서 5위 안에 들었습니다.
존 레논이 받은 상과 기록

고국 땅을 다시 밟지 못한 레논과 발표 50주년의 ‘이매진’

앨범 「이매진」은 발표와 함께 복잡하고 솔직하며 열정적인 한 사람의 온전한 자화상으로 받아들여졌고, 1970년대의 레논이 1960년대 비틀스 시절의 자신에 머물지 않으리라는 것을 보여 줬습니다. 1971년 9월 3일 레논은 영국을 떠나 미국으로 향했어요. 격동의 삶 속 또 한 번의 여행이었지만, 그가 다시는 고국 땅을 밟지 못하리라는 것은 아무도 알지 못했죠.

발표 50주년인 2021년 9월 9일을 기념해 런던 국회의사당과 세인트 폴 대성당, 뉴욕 타임스스퀘어 등 세계 곳곳의 건물에 노랫말 “Imagine all the people living life in peace”가 투사됐습니다. 베를린과 도쿄, 레논의 고향 리버풀에서도 같은 노랫말이 건물을 비췄어요.

존이라면 정말 좋아했을 거예요. ‘이매진’은 그때 우리가 함께 믿었던 것을 담고 있어요.

오노 요코, 발표 50주년 성명(2021년 9월)

출처·참고자료

위 자료를 수집·분석하여 본문 작성에 참고하였으며 2026년 10월 15일 확인 기준입니다. 앨범 「이매진」과 싱글 ‘이매진’은 미국과 영국의 발표일이 서로 다릅니다. 스트로베리 필즈 정보는 Central Park Conservancy 누리집에서 확인하였으므로 방문 전에 다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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